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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20


퇴사 없는 창업
그리고 협업

호커스포커스 로스터스의 김일학 대표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호커스포커스의 대표이면서 로스터기 회사인 스트롱홀드의 영업팀장을 겸임하고 있다. 무려 9년 차. 평일에는 회사 업무에 집중하고 주말에는 호커스포커스 매장에서 바쁘게 움직인다. 

김 대표에게 스트롱홀드는 특별하다. 쇼핑몰부터 시작해 카페 매니저, 외식 프랜차이즈 운영, 제약회사, 패션회사 근무 등 놀아볼 틈도 없이 바빴던 20대를 마무리하고 취업을 알아보던 때에 아버지의 추천으로 알게 됐다. 

“젊은 스타트업 회사라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멋있기도 했고. 꼭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우종욱 대표님께 무작정 연락했어요. 월급 없이 식비랑 교통비만 지급해줘도 괜찮으니까 일하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때 4~5시간 정도 인터뷰를 한 거 같아요. 지금처럼 규모가 컸을 때가 아니라서 한명 한명이 중요했거든요.”

스트롱홀드에 합류하고 나서는 로스터기를 차에 싣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당시만 해도 전기로스터에 대한 인식이 낮았기 때문에 직접 눈으로 보여줘야 했다. 그렇게 영업, 설치, 마케팅을 도맡아서 2년 동안 종횡무진했다.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숱하게 거절당하는 일에도 창피하지 않았고. 상처받지 않았다. 덕분에 회사 내에서도 좋은 실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스트롱홀드의 성장과 함께 그도 성장했다. 

그러다가 호커스포커스를 해야 하는 시점이 찾아왔다. 김 대표는 고민했다. 그런데 퇴사가 아닌 겸직에 대한 고민이었다.

“스트롱홀드가 너무 좋았어요. 그만두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우 대표님과 많이 이야기했어요. 물론 회사에 피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면 그만둘 생각도 하고 있었죠.”

다행히 회사에서는 승낙했고, 김 팀장은 대표라는 새로운 명함을 갖게 됐다. 본인이 원한 일이었지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회사에는 더욱 필요한 존재가 돼야 했기에 결과에 민감해야 했다. 영업에 더욱 신경 쓰는 한편, 호커스포커스에도 강력한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바로 스트롱홀드의 모든 라인업을 갖춘 로스팅 시설이었다.

김 대표는 스트롱홀드 로스터기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성능은 물론이고, 로스팅 프로파일을 저장하고 언제든 불러와 재현하는 기능은 가장 큰 강점이었다. 품질과 생산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최적의 제품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실제로 최근에 진행한 공동구매에서 주문받은 수 톤에 달하는 물량을 현재 시설에서 모두 소화했다.

직접 실행하고 경험한 결과에는 힘이 있다. 그래서 성공사례만큼 좋은 영업이 없다. 호커스포커스는 스트롱홀드의 쇼룸이며, 훌륭한 협업 모델이다.


그들의 포커스는
커피

호커스포커스를 카페로만 바라본다면 외곽에 위치한 대형 카페들의 콘셉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각각 다른 콘셉트로 멋스럽게 꾸며진 4개의 건물동과 잘 꾸며진 정원이 있다. 브런치 맛집으로 소문날 정도만큼 메뉴개발에도 신경 쓰고 있고, 유학파 파티시에를 영입해 베이커리 라인업도 탄탄하게 갖추고 있다.

“오픈하기 전에도 카페가 쉽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스트롱홀드에서 일하면서 카페 운영하시는 대표님들을 얼마나 많이 봤겠어요? 하지만 기왕 해야 하는 일이라면 제대로 해야겠죠? 어설프게 할 거면 안 하는 게 맞고요.”

하지만 호커스포커스의 방점은 카페가 아닌 로스터스에 있다. 브랜드의 성장가능성과 지속성이 모두 커피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무조건 로스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장사가 아니라 사업을 하는 거니까요. 우리나라만 해도 카페가 굉장히 많잖아요. 매장만으로 브랜드를 알리고 성장한다? 어려운 일이죠. 해외에 우리를 알리는 건 더더욱 그렇고요. 브랜드가 더 뻗어가려면 커피가 필요해요.”

브랜드 관점에서 본다면 매장 역시 호커스포커스의 커피를 보여주는 쇼룸인 셈이다. 김 대표는 로스팅, 원두 제조 파트를 계속해서 중심 사업으로 키워갈 생각이다. 최근 여러 업체, 플랫폼과 콜라보 활동을 통해 호커스포커스를 알려 왔고, 지난해부터는 전시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전체 매출에서도 원두 제조의 비중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스마트스토어 외에 홈페이지를 따로 만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판매 채널만으로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제대로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홈페이지 도메인도 오픈 전에 미리 준비해 뒀다. 영상팀을 별도로 꾸려서 시각화 자료를 확보하는 데에도 신경 쓰고 있다.

잘 정돈된 브랜드 메시지는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준다. 원두 납품이나 커피 컨설팅, 교육 등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오프라인에서는 우리의 가치를 실제로 전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온라인은 온라인을 통해서만 매장을 오고 싶게 하거나, 네이버에 지도를 저장하거나, 원두를 사게 만들어야 하죠. 인스타 채널 관리나 네이버 댓글 같은 부분에서 허투루 보이지 않도록 직접 신경 써서 관리하고 있어요. 아직은 부족한 게 많지만, 3년 차 브랜드의 성과라면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호커스포커스에는
마법이 없다

호커스포커스는 우리말로 ‘수리수리마수리’ 정도의 주문이다. 사람들이 카페에 들어왔을 때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하지만 호커스포커스에는 마법이 없다.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을 추구한다. 이를테면 김 대표는 100점에 집착하지 않는다. 점수로 친다면 80점 이상을 꾸준히 받는 게 목표다. ‘상향평준화’다. 

 

로스팅 스타일도 유연한 편이다. 커피마다 복잡한 프로파일로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초중반까지는 생두에 데미지를 주지 않고 열을 충분하게 줄 수 있는 방식을 선호한다. 대신 커피의 캐릭터가 본격적으로 표현되는 1차 크랙부터 배출 포인트까지의 구간에 집중한다. 보통 DTR은 10~15%, 크랙 이후 1분 내외로 배출한다. 20종 이상의 스페셜티 커피를 다룰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접근 때문이다. 100점짜리 로스팅이 목표였다면 3~4종이 고작이었을 거다. 

“스트롱홀드의 장점은 대류열, 복사열, 전도열 3가지 열원을 다 사용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중에서도 복사열은 즉시성, 투과성 두 가지 특성이 있는데, 상대적으로 다른 로스터기에 비해 번트(Burnt)와 스코칭(Scorching) 되지 않으면서도 내부까지 열을 잘 전달할 수 있어요. 커피의 특징을 표현하는 부분은 할로겐으로 디테일하게 조절하고요.”
 

필터 커피를 추출할 때는 자동 브루잉 머신을 사용한다. 숙련된 바리스타의 ‘손맛’에 비하면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로스팅 포인트와 분쇄도, 추출 레시피가 적절히 어우러진다면 충분히 맛을 끌어올릴 수 있다. 여기에 자동 도징 머신과 함께 짝을 이루면 효율은 극대화돼 러시 타임에서도 일정한 퍼포먼스를 유지할 수 있다. 공백 없는 서비스는 중요한 경쟁력이다.

김 대표가 커피나 음식 메뉴만큼 신경 쓰는 건 서비스다. 손님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되,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세련되게 가이드한다. 메뉴판 앞에서 고민하는 손님들에겐 자연스럽게 취향을 묻고 커피를 추천한다. 커피를 서브할 때는 원두카드로 다시 한번 커피정보를 친절하게 전달한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커피가 아무리 맛있더라도 바리스타나 직원의 서비스가 별로라면 가지 않게 돼요. 사람이 주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커피에 대한 스킬도 중요하지만 서비스 태도나 인성 부분도 중요한 거죠.”

80점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노력은 평균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서로가 얽히고 쌓이면서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낸다. 100점짜리 커피와 50점짜리 서비스가 만나 75점이 되지 않는 것처럼, 80점들이 모이면 100점, 또는 그 이상이 된다. 만약 호커스포커스에서 마법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있다면 성실하게 쌓아 올린 디테일의 결과이다.


선명한 캐릭터
그리고
공감하는 캐릭터


처음에는 두 종류로 시작했던 호커스포커스의 블렌딩이 여러 콜라보를 거치면서 6개로 늘어났다. 이제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여러 커피를 자연스럽게 섞어 먹어보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낸다. 커피 역량을 키우기에도 좋다.

“스페셜 블렌드를 만들 때는 그 특징이 단어나 키워드, 문장으로 명확하게 설명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콤플렉스 한 향미도 좋지만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도록 선명한 노트의 커피를 선호해요.”

블렌딩 커피는 브랜드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전달하는 바가 명확하고 분명해야 한다. 또 그 특징을 누구나 어렵지 않게 느끼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호커스포커스가 추구하는 블렌딩의 포인트다. 그러니 원료 선택은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기본기를 탄탄하게 갖춘 좋은 품질의 커피는 물론, 원하는 캐릭터를 충분히 보여주는 생두를 찾아야 한다. 고소한 블렌딩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체재가 적은 산미 있는 블렌딩용 생두를 고를 때는 더욱 신중해진다.

호커스포커스가 코빈즈의 생두를 선택하는 이유다. 사용 중인 10종의 에티오피아 커피 중 7종이 코빈즈의 것이다. 코빈즈의 커피는 캐릭터가 다채로우면서도 분명하고 선명하다. 블렌딩이든 싱글이든 사용 용도가 명확한 커피들이다. 특히 에티오피아 블렌딩은 보나 워시드, 시다마 벤사 산타와니 내추럴만으로 구성해 에티오피아의 매력을 오롯이 담아냈다.

블렌딩이 아닌 싱글오리진 커피로서도 제격이다. 코빈즈의 베스트 셀러라 할 수 있는 시다마 두완초 내추럴은 선명한 존재감으로 사랑받는 커피라 할 수 있다. 

최근 판매를 시작한 에티오피아 시다마 벤사 테제는 청포도와 샤인머스켓 같은 달콤한 향미에 반했다. 날씨가 더워지고 있는 요즘, 에티오피아 아이스 커피는 매력적인 향미를 청량감 있게 즐길 수 있어 추천할 만한 메뉴다.

“좋은 생두는 굳이 강하게 볶지 않아도 그 생두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언더디벨롭(Underdeveloped)은 주의해야 하기 때문에, 코빈즈의 에티오피아 커피를 로스팅할 때는 다양한 플레이버를 어떻게 하면 잘 끌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편이에요.”

브라질 빈할 그레이프의 경우도 호커스포커스의 주요한 싱글 커피다. 브라질은 보통 커피씬에서 높게 평가받지 못하는 산지 중 하나이다. 블렌딩에 쓰이는 베이스용 생두, 고소한 맛을 내는 커머셜 생두로 여기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빈할의 커피는 달랐다.

“브라질 빈할 그레이프를 처음 먹었을 때 생각이 굉장히 복잡해졌어요. 마카다미아처럼 고소한 맛이 베이스로 깔려 있으면서 은은하게 포도 뉘앙스가 도드라졌거든요. 브루잉 커피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나, 특히 산미를 싫어하는 분들에게 추천하기 좋았어요. 그럴 땐 여지없이 빈할 그레이프 커피였거든요. 실제로 고객분들도 만족해하셨어요. 진짜 포도 뉘앙스가 느껴졌다면서 좋아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브라질 커피이기 때문에 에티오피아보다는 조금 더 길게 로스팅하는 편이다. 향미 발현보다는 단맛과 고소한 맛을 끌어내는 데에 중점을 둔다. 캐러멜 라이징 구간의 열량 조절을 신경 쓰고, 1차 크랙 이후 배출까지 시간(DTR)을 15~17%로 진행한다.

빈할 커피는 코빈즈에서 출시했을 당시부터 호커스포커스에서 빠르게 소개했던 커피였다. 대중성과 특별함 모두 갖춘 커피답게 그때부터 지금까지 메인 커피 리스트를 차지하고 있다. ‘생두가 없어서 못 팔’ 일을 걱정해야 할 정도.


”로컬에서 사랑받는 브랜드라는 부분이 감사해요.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와 주시는데, 사실 평택이 쉽게 올 만한 곳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더 감사한 마음이에요. 그리고 전국의 커피 매니아 분들이 우리를 알고, 커피를 경험하고 계세요. 그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인 거 같아요.“

코로나가 잦아든 이후 호커스포커스는 미뤄뒀던 그간의 숙제를 하나씩 정리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꿈꾼다. 먼저는 원두 비즈니스 파트를 담당할 사람을 찾고 있다. 팀을 재정비해 생산과 품질관리 파트의 퍼포먼스를 끌어올리는 한편, 김 대표는 그동안 매장 운영 등을 이유로 케어하지 못했던 납품처들을 방문하며 소통하려고 한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며 함께 성장하기를 바란다. 브랜드를 다방면으로 알리는 타 브랜드와의 협업도 적극적으로 이어갈 생각이다. 

호커스포커스의 진짜 마법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