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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20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서울이나 부산 못지않게 대구에도 많은 커피인이 활동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류 커피로스터스(이하 류 커피의 존재감은 특별하다. 2010년부터 동성로에 자리 잡은 뒤, 대구 스페셜티 커피를 이끌어온 1세대라 할 수 있다.

 

햇수로 14년. 오랜 시간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확장도 했다. 본점을 포함해 세 곳의 매장을 운영 중이고, 로팅 공간도 따로 마련했다. 보통 사업이 커지면 대표는 감독의 위치에 서는 게 일반적이다. 실무에서 한 발짝 물러나 전반적인 경영을 살핀다. 하지만 류지덕 대표는 여전히 바 안에서 손님을 맞고 있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지만, 이 한 잔을 통해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어요. 바에 서서 손님과 소통할 때면 에너지를 얻는데, 커피를 계속하게 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인 거 같아요.”

 

물론 사업을 영위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도, 내일도 생존할 수 없다면 어떠한 커피도 추구할 수 없다. 하지만 생존은 절반의 목표일 뿐이다. 류 커피의 목표는 카페가 아닌 커피이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큰 규모로 확장할 수 있는 기회도 여러 번 있었다. 매일 같이 프랜차이즈를 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투자 제안도 있었다. 하지만 류 대표는 모두 거절했다. 스스로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능력이 안 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형태(매장)에 집중하면서 욕심내고 싶지 않았어요. 제 성향이기도 하고요. 할 수 있는 만큼 해야 오래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느리더라도 할 수 있는 영역을 따져가며 조심스럽게 확장했다. 입점한 지 7년을 맞는 신세계백화점 매장도 백화점 관계자의 삼고초려(三顧草廬) 아니 사고초려(四顧草廬) 끝에 이뤄진 일이었다.

 

원두 납품도 하고 있지만 양이 많은 편은 아니다. 온라인 쇼핑몰도 운영하지 않는다. 류 커피는 오롯이 매장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니다. 자기객관화에서 비롯된 선택과 집중이고, 최선의 전략이다. 14년의 역사가 그 방증이다.


그때의 스페셜티,
지금의 스페셜티


과거의 스페셜티 커피, 카페라고 하면 좋은 콩이나 머신을 쓰는 카페 정도의 의미였다. 류 커피도 그랬다. 나인티 플러스, 파나마 게이샤 같은 유명 스페셜티 커피 농장의 커피를 대구에서 처음 사용했다. 최신 머신들은 가장 먼저 써봐야 직성이 풀렸다. 언더카운터 에스프레소 머신 마밤(MAVAM)은 국내 1호 유저였고, 자동 그라인더 머신도 지역에서 처음 사용했다. 이후에도 숱한 최신 머신들이 류 커피를 거쳐 갔다.

장비에 대한 욕심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것을 보여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었다. 다른 카페와 같거나 비슷해서는 사람들이 류 커피를 찾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산미가 있는 스페셜티 커피를 선택한 것도, 드립커피 바를 매장 전면에 내세웠던 것도 차별화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성품 사용도 최대한 자제했다. 트레이나 앞치마 같은 아이템은 류 만의 느낌으로 직접 제작해서 썼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스페셜티 카페를 표방하는 업체들이 늘었고, 사용하는 커피 퀄리티나 머신 수준도 상향 평준화됐다. 특히 스페셜티 커피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생겨났을 정도로 소비층에도 변화가 있었다. 늘 트렌드를 이끌 것만 같던 류 커피에도 변화가 생겼다. 류 커피의 시선은 좀 더 본질적인 것을 향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만의 에너지라면 결국 사람인 거 같아요. 아무리 좋은 재료와 장비가 있더라도 그걸 커피로 만들어 전달하는 건 사람이니까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매장을 기반으로 핸드드립 커피를 고집해온 그간의 시간이 빛나는 지금이다. 사실 핸드드립 커피가 이제야 특별할 이유는 없다. 최신 브루잉 머신이 쏟아지는 첨단의 시대에 핸드드립은 되려 고루해졌다.

하지만 류 커피의 핸드드립은 커피를 추출하는 행위만이 아니다. 지식과 매너를 갖춘 전문가의 행위는 소통과 관계를 만들고, 또 신뢰로 이어진다. 그래서 커피 바 앞에 앉은 손님들은 모두 오랜 단골들이다. 처음에는 커피 맛에 빠져들었지만, 이제는 커피와 함께 삶의 일부분을 나눈다. 코로나로 인해 유례없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고객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다. 오랜 세월 빚어낸 류 커피만의 가장 확실한 차별점이다.

메뉴나 인테리어로 순식간에 핫 플레이스가 되는 카페들은 많지만, 그 인기와 관심을 지속할 수 있는 곳들은 많지 않다. 지금의 트렌드는 스쳐 갈 뿐이다. 일회적이고 휘발성이 강하다. 사람으로 엮어진 관계의 힘이 앞으로 더욱 빛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클린 컵, 밸런스를
갖추는 게 기본


최근 몇 년 동안 커피 프로세싱은 복잡다단해졌다쫓아가는 게 쉽지 않을 만큼 다양한 시도가 부지런히 이어진다커피에서 느껴지는 캐릭터들도 이전보다 훨씬 다채로워졌다류 커피는 이러한 흐름을 거부하지 않는다브루잉 커피가 중심이기 때문에 캐릭터가 분명한 커피들을 선호한다하지만 캐릭터가 너무 강렬해서 호불호가 있을 것 같은 커피들은 지양한다특히 발효취나 이취가 강한 커피들은 제외한다.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클린컵과 밸런스를 갖추는 게 기본이에요. 애프터에서 부정적인 느낌이 없어야 하거든요. 커피를 테스트할 때는 단맛과 산미의 균형감을 가졌는지를 가장 먼저 살펴요.”

그 지향점을 잘 보여주는 게 시그니처 블렌딩이다. 독도라는 이름의 이 블렌딩은 류 커피의 역사와도 같다. 평소 에티오피아 커피를 좋아했던 류 대표는 큐그레이더 자격증을 딴 뒤로 본인의 취향을 확실히 알게 됐다. 오롯이 에티오피아 워시드, 내추럴 만으로 구성된 산미와 단맛에 집중한 블렌딩이다. 고소함 일색이었던 대구 커피 씬에서 지금의 류 커피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코빈즈의 커피를 사용하게 된 것도 독도 블렌딩 때문이었다. 비율과 구성은 때마다 바뀌지만 블렌딩이 추구하는 목적과 방향성은 일관됐다. 다른 것 없이 에티오피아 커피만 사용하기에 원하는 수준의 품질을 갖추는 게 중요했다.

“여러 에티오피아 커피 중에서도 코빈즈의 커피는 캐릭터가 선명하고 클린컵이 좋았어요. 단맛도 좋아서 워시드 뿐만 아니라 내추럴 커피도 많이 사용하고 있죠.”

블렌딩 외에도 에티오피아, 케냐 등 3종의 싱글 오리진을 사용 중이다. 최근 입고된 브라질 빈할 시리즈도 준비를 마치고 곧 선보일 예정이다.

 


사람이 흐르는 곳(流)

대구에만 해도 류 커피 출신의 유명 카페들이 적지 않다. 전국구가 된 사례도 있다. 매장에서 함께 울고 웃던 직원들이 이제는 같은 업계의 동료가 됐다. 그들에게 출신이라는 말은 딱지처럼 쓰이지 않는다. 따뜻한 기억이고 자부심이다. 그러니 류(柳) 커피는 버드나무보다는 흐른다(流)는 게 더 어울린다.

“본인들이 잘해서 그런 거지만, 개인적으론 뿌듯해요. 고맙기도 하고요.”

시작은 류 대표였지만, 지금의 류 커피는 여러 바리스타가 함께 만들어 왔다. 류 대표도 직원들이 스스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금씩 자신의 역할을 줄이고 내려놨다. 로스팅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영역은 직원들이 스스로 논의하고 협의해 실행한다.

심지어 커피를 추출할 때도 직원들이 자신의 색을 더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검증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류 대표가 주도적으로 이끌던 과거에 비하면 파격적이다. 대신 방향과 목적성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강조한다.

“고객들에게 멋진 모습으로, 전문가답게 설명하고, 좋은 잔에 담아 정성껏 서비스하는 거예요. 그런 결과물이 쌓여서 신뢰를 만들어가는 거죠.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그런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해요.”

바 안은 일종의 무대다. 바리스타들은 고객들에게 전문가임을 보여야(Showing) 한다. 핸드드립, 브루잉 커피가 무기인 만큼 서비스 태도와 전문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류 커피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스스로 역량을 키워가야 한다. 이런 생각들은 선배 바리스타에서 후배 바리스타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류 커피가 자신의 역사를 써내려 온 방식이다. 언젠가 자신의 길을 떠나야 하는 이들에게는 훌륭한 수업이 된다.

사람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스며들고 쌓여갔다. 류 커피를 비옥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됐다.


류 커피는 사람들의 오랜 쉼터와 터전으로 남고자 한다.

“손님들이 대를 이어 오는 카페가 되고 싶어요. 얼마 전에 한 부부 손님이 오셨는데, 오래전에 이곳에서 미팅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아직도 카페가 있어서 놀랐다고(웃음). 자녀가 중학생이 됐다니, 머지않아 같이 오는 날이 있겠죠? ’여기가 엄마, 아빠가 옛날에 데이트했던 곳이야‘ 라면서 말이죠.”